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는 적잖은 의미를 갖는 6월10일. 밥상머리에서 이날 아침 신문을 넘기다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기업인의 동정이 어쩐지 코미디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먼저 포스코 정준양 회장. 정 회장이 가운데 선 가운데 “포스코가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다”고 선포한 행사 사진이 산업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받는 기업>의 저자 라젠드라 시소디어 교수(미국 벤틀리대)도 참석해 행사를 빛냈다고 한다. 시소디어 교수로서는 포스코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자신의 생각을 따 경영조직을 바꾸는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을 터이다.
포스코는 “사회, 파트너, 투자자, 고객, 직원, 환경 등 6대 이해관계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경영을 펼쳐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다”고 천명했고, 최고경영자(CEO) 아래에 전담 조직을 운용하기로 했다. 말하자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CSR이 아니라 ‘쇼’다. ‘사랑받는 기업’ 관련 조직은 CEO가 바뀌는 순간 폐지될 게 뻔하다.
시소디아 교수는 경영학에서도 마케팅 교수다. 원래 저술하려고 한 책은 <사랑받는 기업>이 아니라 ‘초우량 마케팅의 조건’이었다. 그는 “고객의 마음을 열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을 여는’ 목적은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이다. 결국 ’고객을 지갑을 열어라‘는 마케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사랑받는 기업’이란 분류는 큰 의미가 없다. 현직 기업인, 마케팅 담당 교수, MBA 학생, 소비자 등에게 “사랑하는 기업을 말해달라”고 말한 다음 그 조사에서 걸러진 기업들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분석을 진행했다. 이미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받고 있는 기업’들을 ‘사랑받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공통점을 추출한 것이다. 외고 다니는 아이들을 새삼스럽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라고 정의하고 요란을 떠는 행동이나 비슷하다.
시소디아 교수의 작업에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사랑받는 기업’이란 개념은 별 의의가 없다는 뜻이다. 여담이지만 마케팅 측면에서 의의는 확실하게 존재한다. ‘사랑받는 기업’이란 범주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위대한 기업’과 대립각을 만들어 <사랑받는 기업>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성공하려면 거물과 맞짱뜨라는 정치권이나 조직폭력계의 속언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시소디아 교수가 마케팅 교수니 이런 속언을 들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쓰지 않았을까.
시소디아 교수가 제시한 SPICE라는 이해관계자 개념 또한 혼란스러운 것이다. <사랑받는 기업>에서 그는 사회(Society), 파트너(Partner), 투자자(Investor), 고객(Customer), 직원(Employee)의 머리글자를 따 SPICE로 기업의 이해관계자를 설명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끝에다 환경을 뜻하는 E를 슬그머니 추가해 6가지 이해관계자라는 개념을 쓰고, 포스코도 이 개념을 차용했다.
시소디아 교수가 뒤늦게 환경(E)를 추가한 이유가 설마 CSR을 경제/환경/사회의 세 가지 성과 측면에서 설명하는 트리플버틈라인(Triple Bottom Line)이란 개념을 뒤늦게 알아서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념의 틀을, 성과에서 바라보는 관점과 이해관계자라는 과정에서 바라보는 관점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굳이 이렇게 관점을 섞어가며 CSR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어쨌든 미국의 일개 마케팅 교수가 쓴, 견해에 따라서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책을 따서 경영방침을 정하고 관련조직을 만드는 모습이 요즘 포스코의 세계적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받는 기업’은 KT의 “고객님 사랑합니다”보다 더 웃긴다. 사랑받는 기업은 구호가 아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만일 차별화하려고 붕어빵장수가 붕어빵에 실제 붕어를 넣으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반부패 선언 기사에도 눈길이 머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미 만평이나 여러 경로로 이 회장이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다. 나눠 생각하자면 이 회장이 못할 얘기를 한 건 아니다.
언론보도에서 삼성 관계자가 ‘잡범’ 운운했는데, 경영인으로서 그런 잡범을 용납해서 될 일인가. 당연히 기업 내 잡범을 척결해야 하고 이 문제는 최근 CSR의 핵심 주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회장을 비아냥거리는 어법에 근거하면 강력범이 잡범에게 야단치는 건 논리적으로 틀리지는 않았다. ‘강력범’이 아니더라도 기업경영인으로서 이 회장은 당연히 할 일을 했다. 반부패의 기업문화 구축은 시대방향에 부합한다. 정 회장의 ‘사랑받는 기업’ 타령보다는 맥락을 짚은 이야기이다.
다만 후안무치하다는 비판으로부터 이 회장이 자유로울 수는 없겠다.
어쩐지 씁슬하다. 우리나라에서 무식하지 않고 예의염치를 아는 기업경영인이 당당하고 통쾌하게 경영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그러고 보면 이날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이는 광화문에 촛불을 든 대학생들 뿐인가.
먼저 포스코 정준양 회장. 정 회장이 가운데 선 가운데 “포스코가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다”고 선포한 행사 사진이 산업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받는 기업>의 저자 라젠드라 시소디어 교수(미국 벤틀리대)도 참석해 행사를 빛냈다고 한다. 시소디어 교수로서는 포스코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자신의 생각을 따 경영조직을 바꾸는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을 터이다.
포스코는 “사회, 파트너, 투자자, 고객, 직원, 환경 등 6대 이해관계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경영을 펼쳐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다”고 천명했고, 최고경영자(CEO) 아래에 전담 조직을 운용하기로 했다. 말하자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CSR이 아니라 ‘쇼’다. ‘사랑받는 기업’ 관련 조직은 CEO가 바뀌는 순간 폐지될 게 뻔하다.
시소디아 교수는 경영학에서도 마케팅 교수다. 원래 저술하려고 한 책은 <사랑받는 기업>이 아니라 ‘초우량 마케팅의 조건’이었다. 그는 “고객의 마음을 열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을 여는’ 목적은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이다. 결국 ’고객을 지갑을 열어라‘는 마케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사랑받는 기업’이란 분류는 큰 의미가 없다. 현직 기업인, 마케팅 담당 교수, MBA 학생, 소비자 등에게 “사랑하는 기업을 말해달라”고 말한 다음 그 조사에서 걸러진 기업들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분석을 진행했다. 이미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받고 있는 기업’들을 ‘사랑받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공통점을 추출한 것이다. 외고 다니는 아이들을 새삼스럽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라고 정의하고 요란을 떠는 행동이나 비슷하다.
시소디아 교수의 작업에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사랑받는 기업’이란 개념은 별 의의가 없다는 뜻이다. 여담이지만 마케팅 측면에서 의의는 확실하게 존재한다. ‘사랑받는 기업’이란 범주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위대한 기업’과 대립각을 만들어 <사랑받는 기업>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성공하려면 거물과 맞짱뜨라는 정치권이나 조직폭력계의 속언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시소디아 교수가 마케팅 교수니 이런 속언을 들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쓰지 않았을까.
시소디아 교수가 제시한 SPICE라는 이해관계자 개념 또한 혼란스러운 것이다. <사랑받는 기업>에서 그는 사회(Society), 파트너(Partner), 투자자(Investor), 고객(Customer), 직원(Employee)의 머리글자를 따 SPICE로 기업의 이해관계자를 설명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끝에다 환경을 뜻하는 E를 슬그머니 추가해 6가지 이해관계자라는 개념을 쓰고, 포스코도 이 개념을 차용했다.
시소디아 교수가 뒤늦게 환경(E)를 추가한 이유가 설마 CSR을 경제/환경/사회의 세 가지 성과 측면에서 설명하는 트리플버틈라인(Triple Bottom Line)이란 개념을 뒤늦게 알아서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념의 틀을, 성과에서 바라보는 관점과 이해관계자라는 과정에서 바라보는 관점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굳이 이렇게 관점을 섞어가며 CSR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어쨌든 미국의 일개 마케팅 교수가 쓴, 견해에 따라서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책을 따서 경영방침을 정하고 관련조직을 만드는 모습이 요즘 포스코의 세계적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받는 기업’은 KT의 “고객님 사랑합니다”보다 더 웃긴다. 사랑받는 기업은 구호가 아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만일 차별화하려고 붕어빵장수가 붕어빵에 실제 붕어를 넣으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반부패 선언 기사에도 눈길이 머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미 만평이나 여러 경로로 이 회장이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다. 나눠 생각하자면 이 회장이 못할 얘기를 한 건 아니다.
언론보도에서 삼성 관계자가 ‘잡범’ 운운했는데, 경영인으로서 그런 잡범을 용납해서 될 일인가. 당연히 기업 내 잡범을 척결해야 하고 이 문제는 최근 CSR의 핵심 주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회장을 비아냥거리는 어법에 근거하면 강력범이 잡범에게 야단치는 건 논리적으로 틀리지는 않았다. ‘강력범’이 아니더라도 기업경영인으로서 이 회장은 당연히 할 일을 했다. 반부패의 기업문화 구축은 시대방향에 부합한다. 정 회장의 ‘사랑받는 기업’ 타령보다는 맥락을 짚은 이야기이다.
다만 후안무치하다는 비판으로부터 이 회장이 자유로울 수는 없겠다.
어쩐지 씁슬하다. 우리나라에서 무식하지 않고 예의염치를 아는 기업경영인이 당당하고 통쾌하게 경영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그러고 보면 이날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이는 광화문에 촛불을 든 대학생들 뿐인가.
안치용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 소장/ eriss.khan.kr
(웹場 baram.khan.co.kr)
'지속가능한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등록금 말하는대로!!! (0) | 2011/08/02 |
|---|---|
| 정준양 이건희, 무식하거나 후안무치하거나 (0) | 2011/06/10 |
| 신라호텔의 이부진과 기모노를 '옹호'하며 (1) | 2011/04/17 |
| 태양이 주는 꿈..이카루스 혹은 라이트 형제 (0) | 2011/02/15 |
| '통큰치킨'과 이상득, 그리고 정용진 (0) | 2010/12/13 |
| 삼성이 계속해서 유럽에서 물건을 팔려면 (0) | 2010/12/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