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의 중심에 있는 뉴스는 단연 빈 라덴의 죽음이겠지만, MBCTV 프로그램 <나가수>의 화려한 부활 또한 세인을 입들을 한 데 모은 얘깃거리이다. 사실 ‘왕의 귀환’이란 부제를 단 가수 임재범씨의 1위 등극은 여러모로 극적이었다. 죽음보다는 부활이 하긴 일상과 일상의 대화에 더 활력을 주는 소재이겠다.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강렬하고 짙은 여운을 남기는 목소리. 과연 임재범씨는 1등에 오를 만한 공력을 과시했다. 대중문화 평론가들의 분석이 그랬고 나 역시 TV를 시청한 많은 사람들처럼 이러한 견해에 동의한다. 폐쇄적인 임재범씨의 삶, 그 삶의 굴곡까지 더해지고 이제 중년의 연륜을 가미한 그의 노래는 시청자와 관객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 그가 7명의 내로라하는 가수들 사이에서 1등을 한 게 당연하게 여겨질 법하다. 나 또한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그의 공연을 흥미롭게 지켜보고는 1등을 예상했다. 임재범씨의 노래가 주는 감동 때문이었지만, 그의 1등을 확신한 더 본질적인 이유는 평가단의 투표방법 때문이었다.
PD교체라는 아픔까지 겪은 <나가수> 제작진은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모로 보수를 감행했다. 그중에서 관객의 평가방법을 ‘1인1표’에서 ‘1인3표’제로 바꾼 것이 ‘서바이벌 게임’ 구조를 취한 <나가수>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핵심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인3표’ 때문에 나는 임재범씨의 1등을 예상했으며, 더불어 가수들의 공연 내용과 조합해 나머지 순위도 대충 맞출 수 있었다. 어떻게 맞출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반대로 만일 전과 동일하게 ‘1인1표’제였다면(그렇다 해도 아마도 실제로 임재범이 좋은 성과를 올릴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내가 임재범씨의 1등을 예상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에둘러 대답할 수 있겠다.
7명이 출전하는 구조에서 과반에 가까운 3명에게 표를 던지는 방식은 지명도가 높은 가수에게 유리하다. 또 비슷한 조건이라면 공연에서 대중적으로 친근한 노래를 불렀을 때 ‘뽑힐’ 확률이 높다. 1명만을 고른다면 투표하는 사람의 가장 핵심적이고 본원적인 음악적 선호만이 반영된다. 그러나 3명을 선택한다면 1등을 논외로 하고, 2~3등에는 지명도와 대중적인 음악성을 갖춘 가수가 선택될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이다.
더 공정하게 만들려고 도입한 이 방식이 덜 공정하다는 논리를 펴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대안적으로 예컨대 같은 ‘1인3표’제라 해도 1,2,3위에 가중치를 달리 했으면(예 ; 1위 3점, 2위 2점, 3위 1점) 나 같은 대중문화의 문외한은 마찬가지로 순위 예상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이 나쁘지는 않다. ‘1인1표’든 ‘1인3표’든, 혹은 1,2,3위에 가중치를 달리하는 방식을 택하든 크게 문제될 게 없다. 오락프로의 규칙을 정하는 데 이 정도 심혈을 기울였으면 충분하다. 누군가는 가중치를 부여하는 ‘1인3표’제에서라면 임재범씨의 2~3위 득표수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 할 수 있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 방식을 바꿨다 하더라도 임재범씨는 훌륭한 가수이며, 만일 굳이 등수를 따지자면 역시 1등을 했을 수 있으며 아니더라도 2~3등은 했을 터이다. 임재범씨의 공연은 등위 자체를 의미 없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논란은 규칙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이었던 만큼 이제 정한 규칙을 지키면 그만이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나가수>를 보면서 나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떠올렸다. 힘 있고 가진 거 있는 사람들이 사전에 예금을 빼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기가 막혔다. 저축은행 내부자의 도움으로 이뤄졌을 조직적인 범죄에 대해, 범죄 자체보다도 그런 범죄를 저지를 엄두를 낸다는 대범함에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가수>는 가수들이 공연을 벌여 청중의 투표로 잘한 순서를 정한다. 규칙이 적절했는지에 관해서는 시비를 걸어 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공정’하다.
반면 부산저축은행에서는 예금자 다수에게 비밀로 한 채 일부 내부자들이 힘 있는 외부 예금자들에게 연락해 먼저 돈을 빼내갈 수 있도록 했다. 규칙과 공정함은 깡그리 무시됐다.
시청자들은, 결국 국민들은 사소한 규칙 하나를 변경했다는 이유로 프로그램 책임자를 물러나게 했다. 그러니 대명천지에 부산저축은행에서 벌어진 행각을 보면서 국민들이 느낄 허탈함은 형언할 길이 없어 보인다. (빽 없고 힘 없는 부산저축은행의 소액 예금자들의 분노야 말할 것도 없다.) 이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TV의 오락 프로그램이나 보고 살아야 할까. 아니면 임재범씨를 부산저축은행장으로 보내달라고 국민청원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
안치용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 소장 / http://eriss.khan.kr
(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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