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의 ‘한복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일부 우익단체들이 신라호텔에 가서 기습 시위를 벌이겠다고 하는 대목에 이르면 시쳇말로 어이가 상실이다. 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기업이 삼성이 아닌가.

 

<연합뉴스|경향신문 DB>


그래서 나 역시 어이없게도 삼성, 정확하게 신라호텔을 옹호해 보려고 한다. 물론 신라호텔이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씨의 뷔페식당 입장을 막은 행위가 명백한 잘못이라는 전제를 깔고서이다.
우선 신라호텔이 한복을 멸시했다는 주장은 일방적인 매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신라호텔은 기껏해야 손님 재우고 밥 먹이는 호텔이다. 그곳에서 내리는 모든 판단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상인의 것이다. 옷고름이 음식물과 접촉한다거나 품이 넓은 치마로 인해 행동이 불편해서 한복이 뷔페식당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아마도 서비스 측면의 고려가 ‘한복금지’정책에 담겼을 것이다.
이번 사태와 떼어놓고 판단하면 일견 수긍할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서비스는 고객에 봉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고객을 통제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와 그 기준은 상품 관련성을 적용하기 전에 보편적인 인간 존엄성을 우선해야 한다. 삼성그룹과 나아가 재벌 전체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다. 국민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어쨌든 신라호텔은 한복을 홀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그 바탕에는 한복홀대가 아닌 ‘고객창조’를 염두에 둔 오만함이 있었을 것이다.

기모노 논란에 대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 신라호텔이 현충원인가. 기모노든 부르카든 혐오스럽지 않은 복장이라면, 기꺼이 신라호텔의 서비스에 돈을 낼 의사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호텔이다. 호텔현관이 출입국 심사소인가. 시비조로 얘기하자면 왜 양복 입은 사람들의 출입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가.
아예 신라호텔 경영진이 친일파라서 그렇다고 무작정 비난하는 방법도 있다. 핵심은 ‘어느 것은 되고 어느 것은 안 된다’가 아니라 ‘부당하게 어느 것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이다. 한복이 차별받아서 안 되듯이 기모노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에 기모노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정병국 장관의 “엄중 처리”나 국회의원들의 신라호텔 질타를 보면서, 할 법한 이야기란 생각이 들면서도 크게 공감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호텔에 한식당을 강제한다는 발상 같은 것은 어떻게 나왔을까. 경쟁력 있고 우수한 한식당은 호텔 밖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한식의 세계화 같은 과제는 신라호텔의 ‘한복금지’와는 크게 상관없는 사안이다. 상이 차려졌을 때 슬그머니 숟가락 하나 얹고 보는 행태가 익숙한 시트콤의 재방송을 보는 듯했다.

이부진 신라호텔 대표이사의 직접 사과는 칭찬할 만하다. 언뜻 리스크 관리의 모범으로 꼽히는 1982년 타이레놀 사태 때 존슨&존슨의 정면 돌파를 연상시켰다. 또 사과 이후에 신라호텔이 피해자로 보이게끔 하는 시의적절한 언론플레이도 인상적이다.(사실 이런 플레이는 삼성의 특기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 대표의 리더십이 이미지 관리에 국한됐다는 점이다.
신라호텔의 설명대로 뷔페식당 이용 고객의 안전과 위생을 고려해서 한복금지 조치를 취했다면, 이제 ‘한복금지’를 금지하는 행위의 논거는 무엇인가. 한복 입은 고객이 입장할 때 하다못해 옷핀이라든지 옷고름을 고정할 방법을 찾아내는 등 납득할 만한 보완책을 마련하며 백기를 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신라호텔이 최고 호텔이 되려면 한복문제를 정면돌파해야 한다. 이 대표가 근사한 개선책을 만들어 직접 기자회견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검은 옷을 입은 재벌가의 상속녀를 넘어 진정한 최고경영자(CEO)가 되겠다면 말이다.

신라호텔 사태는 호텔측이 밝힌 대로 좀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삼성계열 호텔이니 마녀사냥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1등 기업은 사회의 ‘오해’까지도 기업의 자산으로 축적해야 하며, 자산화 과정에 기업의 책임(CR)을 확고하게 인식해야 한다. 돈만 비싸게 받는 여관이나 선술집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안치용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 소장/eriss.tistory.com
(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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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치용